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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응급실 지키다 과로사…명절이면 생각나는 필수의료 의사는?

  • 2월 10일
  • 3분 분량

남편은 출근 전 "설 연휴에 응급환자가 더 많다"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에도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 하지만 늘 전화로 가족을 챙기던 자상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설날에도 전화 한 통 없었다. 아내는 불안한 마음에 남편의 직장인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실을 찾았다. 그리고 의자에 기대어 숨져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당시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비통했을까? 2019년 설날에 과로사한 고 윤한덕 센터장 얘기다. 온 가족이 즐겁게 모이는 명절에 직장에서 과로사... 필수의료 의사의 책임감은 이런 것일까?



의대 열풍에 가려진 '진짜 의사'의 고단한 일상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세상을 떠난 후 필수의료 의사의 삶이 새삼 조명됐다. 의대 열풍에 가려진 '진짜 의사'의 고단한 일상이 알려진 것이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펼쳐졌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국가유공자 지정 국민청원이 게시됐다. 결국 고인은 민간인으로는 드물게 국가유공자가 됐다. 우리 사회를 위해 특별한 희생과 헌신을 한 공을 국민들이 잊지 않은 것이다. 고인은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청원에 의해 국가유공자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숭고한 정신이 제대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난 4일 고 윤한덕 센터장 7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고인의 공적이 다시 낭독됐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구축, 응급의료 전용헬기-권역외상센터 안착 등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 근간을 직접 설계하며 응급의료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했다. 무엇보다 응급의료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응급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환자를 돌보았다. 설날 등 많은 병원들이 쉬는 명절에는 응급환자들이 몰릴 것을 대비해 비상 상태를 유지했다. 명절에 오히려 집에 못 가고 더 바쁜 사람이 바로 필수의료 의사다.



필수의료 수가 올리고 지원 강화하자는 목소리 어디에...



지난 의대 증원 사태를 계기로 필수의료 의사의 고단한 삶이 다시 알려졌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필수의료의 수가(건강보험에서 가져가는 돈)를 크게 올리고 지원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복귀한 요즘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은 식어가는 것 같다. 역시나 '반짝 관심'이었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들의 열악한 현실은 여전하다. 충분한 인원이 있으면 교대로 집에 갈 수 있지만 의사가 부족하니 교대 근무는 꿈도 꿀 수 없다.



과거 의대 1등이 가던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는 미달이 속출하고 있다. 일이 힘들고 다른 의사에 비해 보상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료 분쟁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도 거액을 물어줘야 한다. 수술을 한 개원의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피성안'(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은 매년 전공의 모집에서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필수의료에 비해 위험 부담이 적고 돈도 많이 벌기 때문일 것이다. 의대 1등 졸업생이 쌍꺼풀 수술 의사를 지망하는 것을 어떻게봐야 할까?



응급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이 환자의 피를 얼굴에 맞으며 의료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수술 위주의 과를 기피하고 있다. 과거 우수한 선배들이 "의사의 진가는 생명을 다루는 바이털(Vital ) 분야"라며 너도나도 필수의료로 몰려 가던 얘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젊은 의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사회 전체가 그렇게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도 어렵고 힘든 3D 일자리는 젊은이들이 기피하고 있다. 의사들의 바이털 분야 기피는 국가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응급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고 윤한덕 센터장은 짧은 일생 동안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명절에도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데 노심초사했다. 그가 떠난 지 꽤 됐지만 아직도 '응급실 뺑뺑이' 얘기가 나온다. 한 밤에 응급실을 찾지 못해 거리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추모식에서 윤한덕 센터장의 뜻을 기린다는 말만 하지 말고 하루빨리 응급의료 체계부터 다져야 한다.



근무 여건이나 수입이 좋은 병원으로 옮길 기회도 있었지만...



"남편은 가족을 사랑했지만, 가족과의 시간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고 윤한덕 센터장의 부인이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고인의 가족은 과로사 당시 경기도 안양의 오래된 30평형대 아파트에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 여건이나 수입이 좋은 병원으로 옮길 기회도 있었지만,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천직으로 알았다고 한다. 많은 필수의료 의사들이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설날에 근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 제대로 대우해줘야 한다. 필수의료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들이 넘쳐 나면 선배 의사들이 설날에는 집에 갈 수 있다. 집에서도 긴급 연락이 올까 봐 마음 조리지 않고 가족과 함께 푹 쉴 수 있다. 내가, 우리 가족이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면 누가 구해줄 것인가? 환자의 피를 얼굴에 맞으며 새벽에도 수술하는 필수의료 의사가 자꾸 사라지고 있다. 고 윤한덕 센터장은 '응급실 뺑뺑이'가 없는 세상을 고대했을 것이다. 그 세상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한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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